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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이야기가 된 강정마을의 합동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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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이야기가 된 강정마을의 합동제례
  • 현석훈
  • 승인 2011.09.14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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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군이 설치한 펜스.     ©민중의소리

북상중이던 제14호 태풍 '꿀랍'(KULAP)이 위세를 떨치지 못하고 열대성 저기압으로 소멸됐지만 방파제 위에 올라서면 몸이 휘청거릴 정도로 바람은 거세게 불었다. 추석 연휴를 맞아 다시 찾은 강정마을은 강한 바람을 제외하고 많은 것이 바뀌어 있었다. 구럼비 해안으로 이어지는 올레길 7코스는 해군이 설치한 펜스로 인해 완전히 봉쇄되어 있었고, 이 때문에 해안에서 생명평화 미사를 드리던 문정현 신부는 마을입구로 자리를 옮겨야 했다.

구럼비 해안으로 가는 모든 길은 철조망으로 둘러싸여 진입 자체가 불가능했다. 심지어 길목마다 경찰이 배치되어 있어 '월담'도 불가능했다. 경찰은 민주노동당 현애자 전 의원이 농성을 벌이고 있는 중덕3거리에 CCTV와 야간조명을 설치해 24시간 감시를 벌이고 있었고, 해군이 설치한 높이 5m 가량의 펜스는 한적한 마을길과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깊어진 갈등의 골은 추석이라고 비켜가지 않았다. 해군기지 건설에 대한 찬·반 입장이 엇갈려 형제간에 벌초를 따로 진행하는가 하면 차례도 따로 지냈다. 차례를 함께 지낸다 해도 말 한 마디 하지 않고 돌아가 버렸다. 강정마을은 명절마다 노인회관에 모여 마을주민들이 합동제례를 지내왔지만 해군기지 문제가 불거진 후에는 명절에 진행되던 모든 행사가 중단됐다. 농성장에서 만난 한 주민은 "예년같으면 강정초등학교에서 민속놀이와 체육대회가 열렸으나 이젠 다 옛날얘기가 됐다"면서 긴 한숨을 내쉬었다.

추석 당일인 12일, 강정마을회는 주민과 평화활동가 5~60명이 모여 합동차례를 올렸다. 추석을 맞아 강정마을 주민들이 고향에 가지 못한 활동가들을 위해 합동차례를 마련한 것이다. 이날 차례상에 올려진 축문에는 '조상의 은덕과 하늘에 감사하며 가장 즐거워야 할 추석에 가장 슬퍼해야만 하는 곳이 있다','친지·이웃·형제·자매들이 갈등으로 나뉘어져 있는 것도 모자라 4·3 이후 처음으로 육지 경찰에 의해 고향이 마구 짓밟히고 있다'고 씌여있었다.

반면 해군기지를 찬성하는 주민들은 특별한 행사 없이 조용한 시간을 보냈다. 강정어촌계는 오전 사무실에서 간단한 차례를 치르는 것으로 대신했고, 찬성 측의 대표장소인 'OO마트'는 이날 하루 종일 문을 닫았다.

공권력 투입에 항의하며 지난 5일부터 단식농성을 벌인 제주도의회 의원들은 13일 "행정사무감사권 발동을 위한 TF 구성에 합류해 의정활동을 통해 위선과 허구로 얼룩진 해군기지 문제 해결에 전념하겠다"며 단식을 중단했다. 이날 오전 강정마을회 고명진 부회장 일행 등은 단식농성중인 강경식 도의원(민주노동당)을 찾아 "단식농성 대신 실질적 방안을 고심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강 의원은 보도자료를 통해 "이중협약서 진위, 크루즈 동시 접안능력, 환경영향평가 이행 여부, 문화재 발굴 등에 따른 근본적인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시점에서 해군기지건설은 당장 중지돼야 하며 투입된 경찰병력의 완전철수를 요청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해군제주방어사령관은 추석 연휴가 시작되던 9일 제주 야5당에 16일까지 시설물을 자진 철거할 것을 통보했다. 해군이 자진철거를 통보한 시설물은 해군기지사업부지에 있는 컨테이너와 망루, 텐트와 천막 등이다. 해군측은 통보한 기일 내에 철거하지 않을 경우 행정대집행에 나서겠다고 밝혀 시설물 철거를 둘러싸고 주민과 경찰 간 또 한차례 충돌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민중의소리=현석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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