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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이명박.오세훈 잇는 토건시장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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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이명박.오세훈 잇는 토건시장 되나"
  • 조태근
  • 승인 2011.12.11 13: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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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락시영 재건축 승인 '사건'에 전문가.시민사회 분노..도대체 왜?
서울시가 박원순 시장이 취임한지 채 두달이 되지 않은 지난 7일 가락 시영아파트 재건축안을 승인했다. 서울시는 "오세훈 시장도 못했던 일"이라며 "공공성과 사업성이 윈윈"한 사례라고 홍보하고 있다.

그러나 그동안 박원순 서울시에 호의적이었던 전문가들과 시민사회에서는 "박원순 시장이 이명박, 오세훈을 잇는 토건시장이 아니냐"는 극단적인 반응까지 나오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는 도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것일까?

먼저 이번 사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전사(前史)를 알아야 한다. 지난달 16일 박원순 시장 취임 뒤 처음으로 열린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에서는 공공성이 충분히 담보되지 못한 개포동 주공.시영 등 4건의 강남 아파트 재건축안이 줄줄이 보류됐다. 재건축시 의무적으로 일정 비율 동안 짓게 돼 있는 임대주택을 저층으로 몰아 넣었고, 가로변을 따라 단지를 배치해 공공성을 해치는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보수언론들과 경제지들은 박원순 시장이 '재건축 속도조절'을 하고 있다며 박 시장 취임 뒤 집값이 떨어지고 앞으로도 떨어질 것으로 우려된다는 그야말로 현실과 상식논리에 부합하지 않는 '괴담'을 유포했다.

여기에 더해 권도엽 국토해양부 장관은 개포동 재건축안 보류 직후 기자들에게 "박원순 서울시장의 주택정책은 친서민정책이 아니다. 재건축 사업의 공공성을 강화하면 서울 서민을 결국 서울 밖으로 몰아내는 것이다"라고 트집을 잡았다. 서울시가 강남 재건축을 보류해 집을 못짓게 해 서민들이 살 집이 없어진다는 말도 안되는 논리였다. 참고로 요즘 개포주공 42㎡ 호가는 7억원 수준이며 정부의 '12.7부동산부양책' 발표 이후에는 2~3천만원 올랐다. 박원순 시장은 "권도엽 장관의 발언, 염치가 먼저다. 그게 상식"이라고 일갈했다.

그러나 이 해프닝은 어찌됐건 서울시와 정부가 재건축 정책을 놓고 충돌하고 있는 현실을 그대로 드러냈다.

논란이 어느 정도 잦아들 즈음인 지난달 30일 박원순 시장은 취임 한달 기자회견에서 "서울시와 정부의 재건축정책은 크게 다른 것이 없다. 재건축시 공공성을 강조하고 임대주택을 배치한 것은 과거 때부터 계속돼 온 정책"이라며 "주택경기가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충분한 철학을 마련하지 않아 현재로서는 기존대로 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갑자기 이달 7일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는 한달 전 보류했던 개포 재건축안보다 훨씬 규모가 큰 가락 시영 6600가구의 재건축을 승인했다. 지난 1980년 준공된 5층짜리 저층 단지였던 가락 시영아파트에는 최고 35층짜리 아파트 8903가구가 들어서게 된다. 단일 아파트 단지 재건축 규모로는 국내 최대규모.

강남.서초.송파 등 강남3구에서 현재 재건축을 추진 중인 아파트 단지가 약 6만 가구인 점을 감안하면 이번 가락시영 재건축안 승인은 강남지역 재건축 10%를 한번에 처리해 준 셈이었다.

특히 서울시는 재건축조합이 신청한대로 재건축 정비구역 용도를 이례적으로 2종에서 3종으로 올린 이른바 '종 상향'을 허용했다. '종 상향' 조정을 통해 일반주거지역의 용적률 상한선이 올라감에 따라 가락 시영아파트 재건축 단지의 용적률은 최대 285%까지 허용했다. '종 상향'에 대해 강남 부동산 업계에서도 놀랍다는 분위기다.

가락 시영아파트 집주인들은 2000년부터 재건축을 추진해왔지만 막대한 개발이익을 둘러싼 재건축 조합원들 간의 마찰과 소송이 끊이지 않았다. 여기에 2005년부터 '종 상향'을 요구해왔다. 용적률에 따라 층수와 가구수가 늘어나고, 그만큼의 개발이익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5년 말에 제출한 종 상향 요구에 대해 이명박 당시 시장이 이끌었던 서울시마저 반려해 결국 2006년 2종으로 지정돼 용적률 230%의 재건축안이 통과됐다.

이후 조합원간의 갈등과 소송이 이어지면서 집주인들은 2009년 12월에 또다시 '종 상향'을 요구하며 재건축 정비구역 변경지정 신청을 했지만 오세훈 서울시도 '종 상향'에 따른 문제점을 지적하며 반려해왔다.

이번에 갑자기 '종 상향'을 허용한 박원순 서울시는 '종 상향'으로 장기 전세주택 가구가 이전보다 959가구 늘어나 총 1179가구가 됐으니 공공성이 확보됐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그러나 이는 도시계획의 'ABC'도 모르는 데서 나온 논리에다, 공공성에 대해 이명박.오세훈 서울시 보다 낮은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비판했다.

조명래 단국대 교수는 '민중의소리'와의 전화통화에서 "이번 '종 상향'은 재건축의 사업성을 도와주는 방향"이라며 "그것이 모든 '종 상향'의 목적이고 나머지는 그것을 정당화 시키는 것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조 교수는 "용적률은 기본적으로 도시계획의 가장 중요한 수단"이라며 "사업성이라던가 임대아파트 늘리는 수단이 아니라 도시 전반적인 개발의 측면에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이번 가락 시영아파트 재건축의 경우 주변까지 고려해 송파 지역을 어떻게 바꾸겠다던지, 인프라 활용 가능성 등 전반적인 판단하에 이루어져야지 단위사업 중심으로 판단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조 교수는 "'종 상향'으로 용적률을 그렇게 높여주고 주변에 과밀 현상이 나타난다"며 "이번 가락시영 재건축 허용은 도시계획에 대한 전반적인 고려가 없었다고 본다"고 말했다.

서울시가 밝힌 공공성의 근거도 빈약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9일 '토건시정 종식 선언한 박원순은 토건시장 되려는가?'라는 제목의 성명에서 "종 상향과 용적률 변경에 따른 사업비 증가, 개발이익 증가 등에 대한 내용을 공개하지 않는 상황에서 단순히 장기전세주택 증가로 공공성을 확보했다고 자화자찬 하는 것은 서울 시민들을 우롱하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경실련은 가락시영 재건축이 시공사가 조합으로부터 공사비를 지급받고 시공하는 방식인 '도급제'가 아닌 건설사가 지분을 갖고 사업에 참여해 개발이익을 추가로 가져갈 수 있는 '확정지분제' 방식인 점을 지적하며 "개발이익 독식을 노린 토건재벌 삼성.현대의 '종 상향' 로비의혹이 짙어 보이며, 결국 종 상향은 토건재벌과 다주택보유 투기세력 만을 위한 정책이 될 수 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종 상향 허용에 충격을 받았다"는 우석훈 2.1연구소장도 10일 자신의 블로그에 "1179가구의 전세 물량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며 "일반 분양 물량을 뒷받침해줄 여력이 없고, 이 점이 손학규가 추진하던 분당 등의 수직 증축이 어려웠던 이유와도 같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우석훈 박사는 "이번 결정에서 제일 나쁜 것은 밀실행정 방식으로 결정됐다는 점"이라며 "좋고 나쁘고, 최적이냐 아니냐, 그런 문제가 아니라 같이 논의할 수 있는 공간을 열지 않고 결정한 것, 그것이 이 사건의 가장 나쁜 점"이라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이번 가락시영 재건축 '종 상향' 허용으로 우려되는 것은 주변 강남지역 재건축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다.

당장 이번 '사건' 이후 강동구 둔촌동 주공아파트, 고덕동 주공아파트, 그리고 은마아파트와 함께 가장 '주목'받고 있는 잠실 주공 5단지 아파트 주민들도 '종 상향'을 요구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이들 지역 집값은 서울시의 가락시영 재건축 '종 상향' 허용 이후 호가가 수천만원씩 오르거나, 내놨던 물건이 사라지고 있다.

우석훈 박사는 "문제는 가락시영 아파트에서 생기는 게 아니라, 이 기준을 가지고 다른 지역에서 용적률을 엄청 올리게 되는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조명래 교수도 "서울시가 다른 재건축 사업과의 관계를 봐서 결정해야 했는데, 취임 뒤 첫 재건축 승인결정인데 다면적 평가가 있었어야 했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박원순 시장의 도시계획 철학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판단"이라고 지적했다.

경실련은 "서울시가 가락시영이 다른 재건축, 재개발 등의 좋은 사례가 될 것이라며 부추기고 있는데, 불가능한 '공공주택 8만호' 공약을 달성위해 장사치가 되려느냐"라고 거세게 비판했다. 박원순 시장이 '공공 임대주택 8만호' 공약 달성을 위해 다른 지역에서도 용적률 상향을 통해 수치상 임대주택만 늘리려는 게 아니냐는 우려에서 나온 것이었다.

경실련은 "이번 서울시의 종상향 조치는 애초부터 불가능했던 '공공주택 8만호'라는 공약실현을 위해서라면 향후 재개발.재건축, 뉴타운에서도 장기전세주택과 맞바꾸는 정책을 추진하겠다는 것과 같다"며 "도시환경, 주거환경, 주거복지보다는 자신의 공약을 위해 토건재벌, 투기꾼, 강부자와 함께 하겠다는 장사논리를 선언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이번 가락시영 재건축 승인을 계기로 기존 서울시 관료들과 박원순 시장 참모진에 대한 문제제기도 나오고 있다.

주택정책 분야 서울시 일부 관료들의 경우 재건축.뉴타운, 임대주택 등 주거복지 관련 사안에 대해 시장이 바뀌었는데도 기존 관행, 관성대로 정책을 펴고 있는게 아니냐는 것이다. 또 중앙정부가 개포 재건축안 보류에 대해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자 자연스레 정부와 보조를 맞추는 분위기가 형성된 게 아니냐는 것이다. 조명래 교수는 "그런 식의 인식이 반영됐다고 본다면 관료들이 시장의 의지와 관계없이 했을 수도 있다"며 "서울시 관료들은 중앙정부와 싸워봐도 별 이익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와함께 현재 박원순 시장의 정책분야 핵심 측근으로 선거캠프에서는 정책본부장을, 현재는 인수위원회 격인 '희망서울 정책자문위원회'의 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수현 세종대 도시부동산대학원 교수에 대한 문제제기도 나오고 있다. 참여정부 시기 청와대 비서관으로 부동산정책을 총괄했던 김 교수는 지난 10.26 재보선 당시 박 시장의 임대주택 8만호 공약을 만든 장본인이다. 이번 '용적률-임대주택' 바꿔치기는 참여정부 시기 주로 활용되던 방식이었는데, 김수현 교수를 비롯한 박원순 서울시에 관여하고 있는 그룹이 관여 내지는 묵인한 작품이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우석훈 박사는 "김수현 교수와 그의 측근들은 결과적으로 DJ정부를 후퇴하게 했고, 노무현 정부를 말아먹었고, 이제 서울시를 다시 한 번 말아먹고 있다"며 "김수현의 조언을 계속 들으면, 결국 그의 조언을 듣던 노무현 정부가 부동산으로 인해 무너진 것처럼, 박원순의 서울시도 무너지게 된다. 그가 나빠서가 아니라, 너무 옛날 사람이고 너무 옛날 패러다임이라 그렇다"고 지적했다.

김헌동 경실련 국책사업감시단장은 10일 자신의 트위터에 "노무현 정부의 정책을 계승해 서울시도 투기꾼과 토건재벌을 상대하며 장사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민중의소리=조태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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