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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박근혜 의원에게 전하는 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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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박근혜 의원에게 전하는 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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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1.12.12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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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레의 길 민족광장 상임의장 배다지> 부산일보 사태를 결자해지 자세로 풀어야 한다
한수(漢水=漢江)이남에서 가장 으뜸이라고 자임하는 부산일보에 불이 났다. 소위 편집권을 둘러싸고 경영진과 노동조합간의 마찰이 끝내 불을 내고 만 것이다. 신문의 편집권을 놓고 서로가 티격태격하는 가운데 열이 나고 또 그 열이 높아지니 결국 불이 날 수밖에...

지난 30일 부산일보는 신문발행 중단아란 신문사상 초유의 사례를 빚었다. 총칼을 들이대고 발행을 중단시키려 해도 끝내 발행을 멈춰서는 안 되는 것이 신문이며, 그 종사자들의 덕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산일보 경영진 스스로가 발행을 중단시킴으로서 전대미문의 마피아적 악행을 저질은 것이다.

부산일보 편집권 독립의 확고한 보장과 사장의 편집권 장악을 막기 위해 사장후보 추천권 요구 등을 정수장학회에 보내는 내용의 노조의 요구를 담은 기사가 들어있다는 이유 때문이라고 한다. 신문발행 중단의 이유치고는 과히 엽기적이라고 할 만큼 별난 사건인데 이미 경영자측은 이와 관련해 편집국장과 노조위원장을 해임했다. 이것이 화근이 되어 부산일보는 일부 경영진을 제외한 전 사원이 똘똘 뭉쳐서 사장실을 점거 농성하면서 제2 편집권 독립 운동을 선언하고 나선 것이다.

신문발행이 중단되니 이 소문이 급속히 독자와 시민들에게 알려지면서 부산일보의 노사문제는 곧 바로 사회문제가 됐다. 일개 지방시문의 노사문제가 바로 사회문제로 전환된 데는 다른 지방 다른 노사문제와는 다른 나름의 이유와 역사가 있다.

부산일보의 설립자는 민족기업인 김지태 씨

부산일보는 작고하신 자명 김지태 선생이 설립한 신문사인데 기업가로서의 김지태 선생은 조선견직주식회사와 한국생사주식회사를 모체로 한 기업으로서 순수한 민족산업으로서 여타의 매판기업과는 다른 기업가였다. 민족기업인으로서의 기업경영행적도 매판기업 속성인 악랄한 수탈경영이 아닌 노사화합형 분위기였다고 한다. 말하자면 인심을 잃지 않았다는 말이다.

이런 기업인이다 보니 두 번이나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그가 운영하는 신문의 주필로 민족독립운동가 백민 황상규(白民 黃尙奎) 선생의 장질 황용주씨를 기용한 것은 김지태 선생의 민족사적 안목을 말하는 것이다.

또한 그 민족사적 안목 탓으로 박정희가 군사쿠데타 거사 자금요청을 거절했다. 그러나 거절하면서도 고발하지 않은 것에서 그 인품을 읽을 수 있다. 고발하지 않았다는 점만으로도 쿠데타 성공 후에 감지덕지하고 받들어야 하는 것이 인간의 도리인데 오히려 박정희는 거사자금 거절의 앙금을 재산(부산일보 주식 100%, MBC주식 100% 부산문화방송 주식 65.5% 대연동 노른자위 땅 10만평의 부일장학회 재산) 강탈로 보복했다.

그때 강탈해간 재산을 바탕으로 부산일보 장학회를 소위 5.16장학회로 이름을 고치고 후일 정수정학회로 이름을 고치며 국가의 이름으로 뺏은 재산을 사유화한 것이다. 지각있는 부산 시민이라면 분노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이 계속되는 그 현장에서 또 전 국민이 목말라하는 언론자유 쟁취운동인 ‘부산일보 제2편집권 독립운동’이 일어난 것이다.

제2편집권 독립에서 ‘제2’가 무슨뜻인가? 여기에도 역사가 있다.

1988년 군사독재의 서슬이 시퍼렇던 그때 부산일보에서 한국초유의 신문파업이 일어났다. ‘편집권 독립’이 주된 요구였다. 편집권 독립! 언론자유에 목말라 하던 부산의 전 시민, 전 국민이 박수를 보내며 가세했다.

6일간의 장기 파업 끝에 얻은 성과는 바로 편집권 독립이었다. 편집국장을 선임할 때 노조가 추천하는 3인의 후보 중에서 국장을 선임하는 제도를 세운 것이다. 이때 부산시민협의회를 주축으로 진행된 시민참여 운동은 단순한 언론자유에 머물지 않았다. 바로 독재타도의 국민적 소망을 담고 있었다. 부산일보 편집권 독립투쟁의 성공은 전 시민적 항쟁의 승리로 전환된 것이다. 이것이 부산일보를 바라보는 부산시민의 인식이요 그 역사이다.

이러다보니 오늘의 사태를 바라보는 부산시민이 어찌 강 건너 불 보듯 하겠는가? 당연히 우리의 일로 알고 나서고 있다. 전국의 각 지역 민주언론운동시민협의회가 연대하여 ‘부산일보 제2편집권 독립운동’에 지지의 입장을 표명한 것을 시작으로 부산의 각 정당 및 사회단체와 원로인사들까지 그야말로 수백 개의 단체가 노조의 편을 들고 나서고 있다. 전국적인 시민과 단체의 참여는 부산일보만이 갖는 특유의 역사성을 보여준다. 이런 역사적 배경을 가진 부산일보가 발행을 중단한 사고(불)가 났으니 그게 어찌 간단한 일인가?

신문이란 그 제작과정에서 교정을 보고 재교, 삼교를 거친 후에도 가판 인쇄 과정에서 또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오류가 발견되면 즉시 윤전기를 세우고 수정을 거친 후에 제작을 계속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그날 신문기사에 고칠 점이 있으면 얼마든지 고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날 부산일보 경영진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고칠 생각을 하지 않고 발행을 중단한 것이다. 신문이 아예 나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신문이란 팔고 싶으면 팔고 팔기 싫으면 안 팔아도 되는 일반 상품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그야말로 공공의 상품이다. 신문을 일러 3권분립에 이은 제4부라 일컫는 것도 그 사회적 공기(公器)로서의 기능 때문이다. 신문에 종사하는 사람이면 그가 경영자이건 일반사원이건 공통적으로 알고 있는 신문 상식 ABC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1월 30일 그날, 부산일보 신문의 경영진이 신문발행을 중단한 것은 바로 공기로서의 신문이라도 나와 이해관계와 상반될 때는 하시든지 공익을 희생시킬 수 있다는 뜻을 표현한 것이라 단정할 수 있다. 가당키나 한 일인가? 이것은 바로 신문경영자로서의 자격을 스스로 내 던지는 처사인 것이다.

신문발행 중단 사태의 최종적 책임은 정수장학회에
 
신문과 더불어 잔뼈가 굴거진 김종렬 당시 사장이 신문발행의 중단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는 위인일터 사전에 정수장학회와 상의없이 결행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짐작되는 바, 신문발행 중단의 최종적 책임은 정수장학회가 져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총칼을 앞세워 권력을 찬탈했던 그 독재의 후예들이 박근혜의 위임을 받아서 운영하고 있는 정수정학회는 이제 사회공기로서의 신문사를 운영할 자격이 없음을 스스로 입증한 이상 하루속히 부산일보는 말 할 것도 없고 정수장학회 자체를 원상회복토록 하는 것이 박정희의 유족일가를 위해서도 현명한 처사가 될 것이다.

국가기관으로서의 진실과 회해를 위한 진상규명위원회가 주도면밀한 조사 끝에 내린 결정은 “김지태 씨의 재산 헌납은 강압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이 확실한 만큼 원상회복하는 것이 가하다”는 것이다. 정수장학회는 이 결정과 권고를 허심탄회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현명한 처사일 것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도 회고록에서 정수장학회를 ‘부정축재’의 시각으로 보았고, 노무현 전 대통령도 정수장학회를 ‘장물’이라고 했다. 눈앞의 부정 그 울타리가 아무리 두텁고 높다 해도 도도히 흐르는 역사와 진실의 바람 앞에는 허물어지기 마련이다. 사필귀정이란 말을 이럴 때 교훈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현명한 사람이다.

마지막으로 박근혜의원에게 드리고 싶은 말이 있다. “그 옛날 김지태 씨가 거사자금은 거절했지만 고발을 하지 않은 후과로 박근혜 의원이 무엇을 누리고 있는가를 해아려 주시요.” [겨레의 길 민족광장 상임의장 배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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