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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대구시, 공짜도 아닌 마스크에 강제 행정조치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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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대구시, 공짜도 아닌 마스크에 강제 행정조치만
  • 오정웅
  • 승인 2020.06.19 13: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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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뉴스] 오정웅 기자 = 지난 17일 오후 7시께 퇴근시간이 된 대구시내의 도로는 막히고, 버스는 붐비고 있었다.

이때, 대구 동성로를 가로지르는 노선의 시내버스 안에서 기사가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버스 안 승객들은 '무슨 일이지? 기사님이 누구보고 소리를 지른 거지?'란 표정으로 버스 안을 한참 두리번 거렸다.

잠시 후 승객들의 눈에 한 분의 할머니가 보였다.

할머니는 마스크를 쓰지 않고 있었다!

대구시는 대중교통 이용시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으면 탑승을 금지하고 있다.

할머니의 허리는 굽어 있었고, 손에는 무엇인지 모를 커다란 보따리가 들려 있었다. 기사는 버스 소음 속에서 목소리는 높였지만, 할머니를 승차거부 하지는 않았다.

몇 코스 지나지 않아 할머니는 동성로 한복판 '2·28기념중앙공원 정류장'에서 내렸다.

기사는 내리기 위해 뒷문에 서있던 할머니에게 다시 한 번,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앞으로 탑승이 안 된다고 소리 높이며 안내했고, 할머니는 연신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할머니가 사과할 일이 맞을까?

무거운 짐을 든 채로 연신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며 굽은 허리를 더 숙이고 있는 할머니를 바라보는 승객들의 표정은 편하지 않아 보였다. 목소리를 높였던 버스기사의 표정도 마찬가지였다.

코로나19 상황에서 모두를 위해 마스크는 필수이다.

마스크를 쓰지 않는 것은 우리 모두의 안전을 해칠 수 있는 잘못된 행동이 맞지만, 할머니가 죄송하다고 연신 사과를 하는 것이 맞는지 의문이 든다.

대구시청 본관의 슬로건은 행복한 시민, 자랑스러운 대구이다. 대구시청 전경. (사진=서주호 기자)
대구시청 본관의 슬로건은 행복한 시민, 자랑스러운 대구이다. 대구시청 전경. (사진=서주호 기자)

코로나19 그 소용돌이 한복판에 대구가 있었고, 대구 시민들은 지금 폭염주의보가 발령되는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마스크 쓰기에 철저하다.

하지만, 마스크는 무료가 아니다. 되려 정상가격보다 몇 배나 비싸다.

할머니의 그 보따리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알 길은 없었지만, 혹시 하루종일 시장의 땡볕에서 팔다 남은 나물 보따리는 아니었을까? 오늘 하루종일 판 나물값으로 마스크는 몇 장을 살 수 있을까?

할머니는 코로나19 한복판에 있던 몇 달 동안의 대구에서 몇 장의 마스크를 가질 수 있었을까? 어떻게 자신의 건강과 모두의 안전을 지키며 살아왔을까?

이제 마스크 대란 사태는 일단락 되고 있다.

대구시는 '대중교통·공공시설 이용시 마스크 착용 의무화' 행정명령을 발령하기 전에, 피해자인 시민들을 향한 '300만원 벌금 부과' 처벌조항부터 만들기 전에, 대중교통에 일회용 마스크를 비치할 생각을 할 수는 없었을까?

현재 대구는 버스를 향해 뛰느라고 흐트러진 마스크를 다시 고쳐 쓰려다가, 또 어린 아이들은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마스크를 벗다 바닥에 떨어뜨릴 수도 있을 만한 날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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