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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우리의 뿌리이자 우리의 정신이다"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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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우리의 뿌리이자 우리의 정신이다" (영상)
  • 권준형
  • 승인 2021.07.01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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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칭 대한민국 임시정부<br>​​​​​​​[신화통신=동양뉴스]
충칭 대한민국 임시정부
[신화통신=동양뉴스]

[서울=동양뉴스] 권준형 기자 = 중국 충칭에는 독립운동가들의 흔적이 담긴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 진열관이 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10년 한일합병 후 1919년 중국 상하이에 처음으로 수립된 망명정부였다.

임시정부는 1945년 8월 15일 광복이 되기까지 항저우(杭州·1932), 전장(鎮江·1935), 창사(長沙·1937), 광저우(廣州·1938), 류저우(柳州·1938), 치장(1939), 충칭(重慶·1940) 등지로 청사를 옮기며 광복운동을 전개했다.

신화통신에 따르면 1937년 말 임시정부가 창사에 둥지를 튼 후 한국과 중국은 양국이 힘을 합쳐 외적에 대응해야 하는 필요성을 절감하고 한중 우호단체인 중한호조사(互助社)를 각지에 결성했다고 한다.

창사 중한호조사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선전원이 후난 지역에서 반일 선전 활동을 펼치는 데 물질적으로나 도의적으로 한국의 독립운동을 적극 지원했다.

이후 1940년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충칭으로 옮겨졌고 1945년 독립하기까지 중국 청사로 활용됐다. 이 기간에도 중국공산당은 한국의 독립운동에 협력과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고 신화통신은 전했다.

해방 후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들은 충칭을 떠나 한국으로 돌아갔는데, 김구 선생의 '백범일지'에는 당시 저우언라이, 둥비우를 비롯한 중국공산당 지도자가 임시정부 국무원 전원을 위해 송별연을 개최해줬다고 적혀있다.

중화인민공화국과 대한민국이 정식으로 수교를 맺은 1992년 8월 24일 한국 측 인사들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구지(舊址·옛터)를 복원하기를 희망했으나 임시정부 구지는 당시 주민들의 거주지역이자 상업용 부동산 개발 대상 지역이었다.

하지만 충칭시 정부가 경제적 손실을 무릅쓰고 이 터를 보존하기로 하면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구지는 1995년 8월 정식 개관했다.

개관 이후 임시정부 구지 진열관을 찾는 관람객은 매년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지난 2010년 이후 관람객이 크게 늘기 시작해 2019년 최고 기록을 세웠다.

개관 20여년 동안 한국 관관객들이 남긴 100여권의 방명록도 눈에 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우리의 뿌리입니다. 우리의 정신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12월 중국 충칭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구지 진열관을 방문해 방명록에 이같이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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