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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칼럼] 왜 가족이 힘들까-지나친 꾸짖음으로 인한 낙심(落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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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칼럼] 왜 가족이 힘들까-지나친 꾸짖음으로 인한 낙심(落心)
  • 김원식
  • 승인 2022.07.18 14: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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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상 박사&송유미 교수의 '우리 家 행복한 家' ①
송유미 교수
송유미 교수

[동양뉴스] 필자가 만난 A(18)군은 겉으로는 나무랄 데가 하나도 없는 모범생이다.

학업 성적도 우수하고 친구들과의 관계에서는 친화력이 그다지 높은 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낮은 편도 아니다.

평상시에는 학업에 몰두하느라 정신이 없다가도 가족이나 친구 중 누군가가 자기가 한 말에 호응을 해 주지 않는다거나 귀담아 들어주지 않으면 몹시 불편해지다가 낙심하게 된다.

처음에는 그들이 원망스럽다가 최종적으로는 그런 자신이 굉장히 초라해 지기도 하고 한심해 진다.

그러다 보니 아예 말을 하지 말자 싶어 공부에만 더 전념하게 된다.

이 세상에 믿을만한 것은 공부뿐이고 공부만큼 자기 자신을 알아주는 것은 없는 것 같아서다.

A군은 3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연년생인 누나랑 동생들을 같이 키우려니 그의 부모님은 허용보다는 통제식의 양육이 편했던 것 같다.

한 예로 유치원 다닐 때 누나랑 유치원 탕비실에서 녹차 티백을 가져온 적이 있었는데 말도 없이 가져온 것을 안 아빠가 다짜고짜 화를 내면서 심하게 꾸짖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었는데 말할 틈을 주지 않아 듣고만 있어야 했고 많이 억울했다고 했다.

가져가도 되는 줄 알고 그냥 가져왔는데 자기들 말은 전혀 들어주지 않고 마치 도둑질을 한 것처럼 몰아부쳤다는 것이다.

그 후로 자신이 어떤 말을 하더라도 '아빠는 들어주지 않는구나' 하는 마음이 생긴 것 같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런 마음이 생기면 '말을 안하고 말지 뭐' 라면서 입을 닫게 된단다.

어떨 땐 그냥 눈물부터 날 때도 있단다.

안 울려고 해도 눈물이 나고 그런 나에게 친구들은 '아니 왜 울어!' 라면서 당황해 하다 많이 부담스러워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예 입을 닫게 된다고 했다.

A군의 내면에는 '낙심(落心)'이라는 감정이 많은 것 같다. 낙심은 바라는 일이 이루어지지 않아 마음의 힘이 빠진 상태이고 자기 자신을 꾸짖는 것과 같다.

심하게 꾸지람을 듣고서 그것이 내면화되어 어릴 적엔 아빠가 A군을 심하게 꾸짖었겠지만 이젠 A군이 아빠처럼 스스로를 꾸짖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내면화 과정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이런 내면화는 어떻게 발달하게 되는 걸까?

내면화란 여러 감정 중 특정한 상황에서 감정의 기능이 멈추어서 아예 성격 스타일 자체로 굳어졌다는 뜻이다.

아마 우리 주변에도 '투덜이' 혹은 '맨날 인상 찌푸리고 돌아다니는 사람' '슬픔에 젖어 사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은 어떤 특정한 감정이 이젠 그 사람의 정체성 즉 성격의 핵심이 된 것을 보여준다.
  
대상관계이론의 근대 개척자인 오토 컨버그(Otto Kernberg)의 말을 빌리면, 아동들은 정서적으로 강렬한 경험, 전형적으로 주양육자가 포함한 경험에 대한 반응으로 자신을 보는 시각과 타인들을 보는 시각 안에 여러 가지 정태들을 발달시킨다.

이러한 강렬한 경험에는 양육자가 아동의 요구를 만족시켜 주거나 또는 궁핍하게 만들어 줌에 따라서 사랑의 느낌이나 증오의 느낌이 생길 수도 있다.

아동들이 여러 가지 관계태를 만들어 내는 거푸집을 발달시키는데, 어릴 적의 이러한 강렬한 경험들이 정서적으로 어떤 유형의 행동양식으로 각인(imprinting)된다.

결국 A군에게는 그냥 생각없이 유치원 탕비실에서 녹차 티백을 가져왔는데 아빠로부터 도둑으로 내몰리며 심한 꾸지람을 들은 것은 강렬한 경험이었던 것 같다.

A군 입장에서는 그게 도둑으로 몰릴 만큼 그렇게 잘못된 것일까? 잘 모르겠다는 것으로 억울함이 컸을 것이고, 아빠의 꾸짖음대로 크게 잘못된 행동이라고 했을 때는 죄책감이 컸을 것이다.

억울함과 죄책감은 이미 자기 자신이 되어 버렸고, 그래서 사소한 사안이라도 많이 억울해 하고 죄책감에 빠져드는 것이다.

이것은 계속 반복적으로 나타나게 된다.

이제부터 A군은 어떤 사안이나 관계에서 자기 자신을 스스로 꾸짖기보다 자신을 지나치게 꾸짖었던 부모와 분리시켜 자신을 보호하고 안전감을 느낄 수 있게 해야 한다.

어릴 적 그때 아빠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자기 자신에게 들려주면서 스스로 확신을 갖는 것이다.

그러면 어릴 적 그때 아빠로부터 어떤 말을 듣고 싶어 했을까?

'아빠, 이게 그렇게 까지 꾸짖을 만큼 잘못된 것인가요? 잘 모르고 한 거잖아요. 저는 억울해요. 나는 아빠가 무조건 꾸짖기 보다는 나의 상황을 이해해 주고, 타일러 주어도 충분히 고칠 수 있는 사람이에요. 티백이나 내가 가지고 싶은 것이 있다면 그냥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라는 방법을 일러주시면서 그 방법대로 충분히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라는 말이 아니었을까?

A군의 심리적 낙심은 어릴 적 지나친 꾸짖음의 결과이며 내면화에 따라, 이젠 자기가 자신을 꾸짖는 것으로 반복해서 나타나고 그것이 자신의 정체성이 고착화되어 있음을 기억하게 하자.

이젠 A군 자신의 정체성을 스스로 원하는 대로 만들어 가게 하자.

A군은 스스로를 꾸짖는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가 방법을 찾을 수 있는 지혜로운 자이면서, 능력있는 자임을 알게 해 주고 그렇게 하도록 도와주자.

(외부 칼럼은 동양뉴스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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