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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칼럼] 가족의 변화, 그 시작과 끝-베이비붐세대의 과거와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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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칼럼] 가족의 변화, 그 시작과 끝-베이비붐세대의 과거와 미래
  • 김원식
  • 승인 2022.10.28 12: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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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상 박사&송유미 교수의 '우리 家 행복한 家' ⑧
이제상 박사.
이제상 박사.

[동양뉴스] 대기업에 근무하다 퇴직한 김철수(62·가명)씨는 3년 전 요양병원 사무직에 재취업한 뒤, 주말이면 산에 약초를 캐러 다니고, 평일 퇴근 후에는 탁구장엘 간다.

최근 구청장배 탁구대회 단체전에서 우승을 한 뒤 더욱 신났다.

10년 가까이 레슨을 받으며 공을 들인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

또래에 적수가 없다.

요즘 사는 게 재미있다고 말하기는 그렇지만, 자신감에 차있다.큰 걱정이 없다.

자기 명의로 된 아파트 한 채, 아내 명의의 아파트 한 채, 고향에 마련해둔 전원주택 그리고 그 외 주식 등등 살림살이도 괜찮다.

다만 대학 졸업 후 아직 취업하지 못한 막내아들이 걱정이다.  

그의 인생을 돌이켜보면, 나름 고생을 했지만 그래도 혜택을 많이 본 세대다.

베이비붐세대라 하기도 하고, 58년 개띠와 70년 개띠 사이의 586세대라고도 한다.

인구 피라미드를 보면 인구가 많은 세대다.

어린 시절 산업화의 혜택을 입었고 청년시절 직접 민주화를 경험했으며, 성인이 되어 IMF 외환위기와 한·일 월드컵 그리고 대통령 탄핵 등 역사의 굴곡을 봤다. 

◇'산업화 혜택, 민주화 직접 경험'

1960년 경북 고령에서 태어난 김씨는 할머니 할아버지 삼촌 고모, 그리고 4남매와 함께 10여명의 대가족 틈에서 자랐다.

1967년 국민학교에 입학한 그의 반 학생수가 60 여명이었고, 담임 선생님은 남자 선생님이었다.

1969년 중학교 무시험 입학 제도가 도입됐고, 1974년 고교평준화로 인하여 '뺑뺑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그는 소를 팔아 등록금을 마련해주신 부모님 덕분에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다.

1979년 당시 고졸 남학생의 30%정도만이 대학에 진학했는데, 지금의 80%에 비하면 그야말로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입학하던 1979년부터 10·26사태, 12·12사태, 5·18 광주민주화운동 등 현대사를 거리에서 캠퍼스에서 몸소 목격했다.

졸업 무렵이던 1987년에는 6․10항쟁도 직접 뛰었다. 자신도 민주화에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대학시절 잔디밭에 앉아 유행하던 대학가요제 대상곡인 ‘나 어떡해’와 ‘젊은 연인들’ 등을 부르며 친구들과 막걸리를 마셨다.

1980년대 후반 졸업을 앞두고 건설업 도소매업 쪽으로 취직하는 친구들이 많았고, 제조업체로 가는 친구들도 많았다.

향후 수출입도 증가할 것 같다며 무역회사를 추천하는 선배도 있어서 진로를 두고 고민했지만, 취직은 비교적 쉬웠다.

그러나 취업한 여자 선배들은 출산·육아로 인해 고민하다가 대부분 직장을 그만두었다.

◇'IMF위기, 월드컵 현장에서 겪어'

1990년 만 서른이 되자, 집안에서는 결혼하라고 성화였다. 후배들이 노총각이라고 놀렸다.

당시 남성의 평균 초혼연령이 27.8세, 여성이 24.8세였다.

결혼한 김씨는 딸과 아들, 2명의 자녀를 두었다.

자신이 초등학교 다닐 때는 주위에 4남매, 5남매인 친구들이 많았는데, 2명이면 족하다고 생각했다. 1명만 낳은 친구도 꽤 있었다.

요즘 아파트에 살지만, 신혼은 단독주택에서 시작했다.

아파트가 낯설었다. 75.3%가 단독주택이고 아파트는 14.8%에 불과했다.

1989년 노태우 대통령이 주택200만호 건설계획을 발표했는데, "그 때 어디어디에 아파트 한 채 사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하는 생각도 든다.

명절 때는 부모님이 계신 고령을 찾았다가, 포항 처갓집을 다녀온다. 

1997년 IMF 외환위기를 맞으면서 김씨는 회사가 어려움에 처하자, 직장을 잃었다.

실직한 1년여 기간에 김씨의 삶은 암흑 같은 터널이었다.

다행히 같은 업종의 규모가 작은 회사로 재취업했다.

30대 후반에 닥친 IMF 외환위기는 김씨에게 가장 영향을 끼친 사건이었다.  

2000년대 들어 회사를 옮기고 부장으로 승진하면서 월급이 올랐다.

아이들 학원비도 대폭 올랐다. 40대 중반 주5일제가 시행되어 토요일 휴무를 처음으로 만끽했다.

2010년대 몸이 예전 같지 않았다. 눈도 침침하고 혈당수치와 혈압수치도 높아갔다. 등산도 하고 술을 줄이는 등 건강에 관심을 기울였다.

뇌졸중으로 쓰러진 동료나 암으로 치료받는 친구 소식도 들려왔다. 

◇'이들의 미래는 어떻게 펼쳐질까'

60년을 돌이켜 보면 뽕나무밭이 바다로 바뀔 만큼 세상이 변했다.

어린 시절 박정희 대통령이 영원히 대통령인줄 알았고, 북한엔 뿔 달린 괴물이 산다고 생각했다.

인터넷도 컴퓨터도 생각하지 못했고, 카톡도 페이스북도 상상하지 못했다. 주변에 4형제, 5남매는 흔했고 7, 8남매가 드물지 않았는데 지금은 자녀가 3명이면 애국자라는 소리를 듣는다.

앞으로 어떤 미래가 펼쳐질까.

그리고 베이비붐세대는 어떻게 될까.

(외부 칼럼은 동양뉴스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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