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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칼럼] 생산자(勞動者) 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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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칼럼] 생산자(勞動者) 윤리
  • 서다민
  • 승인 2023.02.27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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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범 교수의 세상을 보는 눈
강경범 교수.
강경범 교수.

[동양뉴스] 우리는 살면서 가족의 조언, 타인의 판단(判斷), 다양한 정보의 수집 등을 토대로 각자 기준을 마련하여 여러 가지 선택을 한다. 그럼에도 언제부터인가 고질적 사회문제인 부정부패, 지역감정, 학력주의와 학력 경쟁에 대한 뚜렷한 해답을 찾지 못하였다. 여의교를 지나치며 바라본 의사당 건물은 변함이 없으나 민의(民意)의 반영이라는 명분 아래 당쟁과 사리사욕,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줄서기 하는 정치인의 모습을 떠올려본다. 표류하는 수많은 정책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바라보는 국민의 정서마저 한몫하니 변화에 따른 위기의식에 우리 모두 관심(關心)이 없다. 정작 위기(危機) 속에 직면해 있지만 그저 바라만 보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대한민국은 서서히 남파선(難破船)이 되는 듯하다.

다양한 사회문제 중 인재(人災)로 인한 저출산 고령화 문제의 심각성은 모두가 익히 알고 있으리라 생각된다. 이십삼 년간 이어지는 초저출산의 영향은 지방 도시의 소멸, 인구소멸 나아가 국가의 소멸(消滅)을 예고하는 것이리라. 훗날 한기의 폭설과 한파로 뒤덮인 대한민국에 정착할 자는 누구인가. 이것은 비단 나 혼자만의 생각일까. 다음 세대에 전할 인구학적 미래의 해답을 찾기 위한 진정성(위기의식)이 과연 우리에게 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그 해답을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얼마 전 사회적가치연구원(CSES)과 트리플라잇의 “2022 한국인이 바라본 사회문제 연구 보고서”에 의하면 100대 사회문제 중 1~2순위로 나타난 소득과 주거, 고용과 노동의 불안정에서 필자(筆者)는 접근해 보았다.

논어(論語)·계씨(季氏)편에 “불환과이환불균 (不患寡而患不均), 불환빈이환불안 (不患貧而患不安)” 백성이 적음을 걱정하지 말고, 처우(處遇)가 고르지 못함을 근심하고, 백성이 가난함을 근심하지 말고, 인심이 안정되지 못하는 것을 근심하라는 말이다. 지금은 옛말처럼 되었지만 한서(漢書) 문제기(文帝記)의 조서(詔書)에서 “농자천하지대본 민소지이생야(農者天下之大本也 民所恃以生也)는 농사는 천하의 가장 큰 근본적인 일이기에 나라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며 백성들은 이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것처럼 백성의 소득과 안정된 삶의 보장이 기본이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사회의 양극화 현상의 위기(危機)는 노동자(勞動者)의 윤리 즉 생산자(生産者) 윤리를 무시한 채 부익부(富益富) 빈익빈(貧益貧)으로 치닫고 있다.

얼마 전 “직업에는 귀천(貴賤)이 있다. 있기에 우리는 없다고 가르치는 것이다”는 말처럼 오로지 삶의 현장에서 묵묵히 헌신(獻身)하여 온 올바른 도덕적 가치로서의 노동(勞動) 즉 생산자(勞動者) 윤리의 중요성을 알아야 한다. 농부에게 힘든 노동을 강요하며 농사를 천하의 근본이라고 회유(懷柔)하지 않았던가. 때론 회사를 내(我) 일처럼, 화장실의 청결을 강조하면서 자본가들의 부의 축적은 다양한 직업의 생산자 윤리의 노동을 통하여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근본적인 생산자 윤리의 보장은 삶의 안정을 추구할 수 있는 소득으로 반드시 귀결(歸結)돼야 한다.

이제 최 빈(貧) 수혜국에서 선진국의 대열에 합류하였으나 국민의 삶의 기준은 철학적 소신도 없이 물질에 가치를 둔 자본가에 그 초점을 두고 있다, 매스컴에서 쏟아내는 내용들은 하나같이 시대적 트랜드를 읽지 못함과 비전 제시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 등을 들며 기업의 소멸과 비운의 기업 이야기로 회자(膾炙) 되고 있으며 때론 정책과 밸런스를 맞추는 것에 초점을 둔 권력과 재물 명예를 좇아 핏발을 세운다. 하지만 서민경제에 있어 물가상승과 금리 인상 등은 피부로 직접 와 닿기에 보랏빛 구호보다 가진 자들의 참 용기가 비로소 진실을 마주할 때가 왔다. 복지국가 스웨덴의 페르 알빈 한손 (Per Albin Hansson, 1885년 10월 28일, 쿨라달 (Kulladal) ~ 1946년 10월 6일, 스톡홀름)의 말처럼 이제는 “강한 국가보다는 복지확대”를 생각할 때이다. 한손(Hansson)의 말처럼 “나라는 모든 국민이 안정된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는 국민의 집(Folkhemmet)”으로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 하지만 결코 이것이 정답이라고 강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국가와 기업은 생산자(勞動者) 윤리에 대한 안정된 삶의 소득보장을 통하여 저출산 해결 및 삶의 질을 높여주는 원동력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외부 칼럼은 동양뉴스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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