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8 18:09 (목)
[복지칼럼] 왜 가족이 힘들까?-엄마를 부르고 싶었던 40대 남성
상태바
[복지칼럼] 왜 가족이 힘들까?-엄마를 부르고 싶었던 40대 남성
  • 김원식
  • 승인 2023.05.22 14:4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제상 박사&송유미 교수의 '우리 家 행복한 家'
송유미 대구사이버대학교 사회복지상담학과 교수(행복한가족만들기연구소 소장)​

[동양뉴스] 40대 중반의 A씨는 아이 하나를 둔 가장이다.

지금껏 자주 직장을 옮긴 탓에 제대로 해낸 일이 없다.

그러다 보니 특별한 지식이나 기술이 없어도 할 수 있는 일만 전전했다.

대부분 몸을 쓰는 일이든가 물건을 파는 영업직이다. 근래 오래 일을 했던 기간이 3개월 정도이다.

A씨가 직장을 그만두는 이유는 다양했다.

나이 어린 선임자가 아랫사람 부리듯 해서, 무거운 물건을 들고 고층 계단을 올라가야 해서, 동료들이 담배를 피워서, 거래처 방문 날짜를 상의 없이 변경해서, 숙소 청소를 시켜서 등등. 직장을 그만두고 나올 때는 그냥 나오지 않았다.

A씨의 말을 빌리자면 ‘엎어버리고’ 나왔단다.

다행인 것은 직장을 그만둔 후 새 직장을 얻기까지 공백이 그리 길지 않다는 것이다. 뭐든지 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 어린 시절 따뜻한 양육자를 만나지 못했다

A씨가 어릴 때 엄마가 병으로 돌아가셨다.

A씨가 들은 바로는 엄마는 A씨를 낳은 지 얼마되지 않아 병을 얻었고 그날 이후 제대로 젖도 못 물렸다고 한다.

A씨는 ‘엄마’를 불러본 기억이 없다.

그러던 중에 초등학교 저학년 때 새엄마가 오셨다.

A씨에게 엄마는 한 사람뿐인데 새엄마에게 ‘엄마’라고 부르라고 하니 참으로 어색했다.

그래서 새엄마와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고, 부를 때도 ‘저기요’라고 했다.

그럴 때면 새엄마는 ‘엄마’라고 하지 않는다고 아버지에게 일렀고, 아버지는 소리를 지르며 야단을 쳤다.

아버지로부터 따뜻한 다독임을 받은 기억이 없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A씨는 마음속에 화가 치밀었고 새엄마에게 반항을 하기 시작했다.

새엄마는 그를 더 이상 키울 수 없다며 친할머니에게 보내자고 했고, 아버지는 새엄마가 하자는 대로 했다.

A씨도 친할머니와 사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 좋았다.

친할머니와 살면 좋겠다 싶었는데 그것도 얼마 가질 못했다.

잔소리하며 수시로 나무라는 할머니가 싫어졌다. 그때부터 A씨의 학교생활은 엉망이 되었다.

고등학교 때는 교내에서 편 갈라 싸우는 것은 기본이고, 인근 학교 학생들을 괴롭히며 돈을 빼앗기도 했다.

출석 일수는 겨우 채웠고, 다들 자격증 하나씩 가지고 졸업하는데 그는 그것 없이 졸업만 겨우 했다.

그러다 보니 변변한 곳에 취업할 수 없었다.

◇ 내면에 공허감이 가득한 불안한 인생

A씨의 내면에는 사랑이라는 게 없다.

갓 태어난 아이가 따스한 포대기에 쌓인 채 엄마 품에 안겨본 적이 없다.

누군가 자신에게 먹여주고 재워주고 입혀주고 따뜻하게 말해 준 적이 없다. 그러다 보니 내면에 공허감이 가득했다.

A씨의 현재까지의 삶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삶이다.

아기일 때부터 제대로 된 돌봄을 받지 못한 상처투성이인 A씨로서는 잘 살아낸 것이다.

그러나 결혼을 하고 한 아이를 둔 가장으로서는 무책임하고 불안한 인생이다.

A씨에게 도돌이표처럼 반복되는 생활의 출처에는 내면의 상처받은 아이가 있기 때문이다.

충분한 정서적 공급이 이루어지지 않아 내면에 덜자란 상처받은 아이가 웅크리고 있다.

현재의 생활 대부분은 상처받은 어린 내면의 아이로서는 감당하기가 힘겹다.

감당하기 위해서는 내면의 아이를 키워내야 한다.

다른 누군가가 키워내는 게 아니다. 바로 자기 자신이 감당해야 한다.

성인이 된 A씨에게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느냐며 지지와 응원을 해 주었다.

그러면서 현실적으로 살아내려고 발버둥치고 있는 그의 자원을 발견했다.

목표는 A씨 자신이 자신의 내면의 아이에게 먹여주고 재워주고 입혀주고 따뜻하게 말해 주는 양육자가 되는 것이다.

우선, 내면의 아이부터 만나야 한다.

‘갓 태어난 아이가 따스한 포대기에 쌓인 채 엄마 품에 안겨 있다. 엄마는 출산의 고통으로 땀에 흠뻑 젖어 있다. 엄마는 경이로움과 사랑으로 눈물을 흘린다. 엄마는 조심스럽게 아이를 싸고 있는 이불을 열어 아이의 손가락과 발가락 수를 세어 본다. 아이의 몸을 세밀하게 들여다보고 갓 태어난 아이의 탄생을 환영하고 있다. 그 아이는 울기 시작한다. 주저함없이 엄마는 자기 젖을 물린다.’

A씨는 이런 아이와 엄마와의 만남에 대해 매우 경이롭다고 했고, 이런 아이에게 오랫동안 같이 있어 주지 못한 엄마가 원망스러우면서도 보고 싶다며 눈물을 쏟아냈다. 

◇ 내면의 아이에게 엄마 역할을 해야

두 번째는 지금껏 생활은 엄마에 대한 원망스러움이 내면화된 결과였고, 그 원망스러움을 투사라는 방어기제로 누구의 탓으로만 돌리고 있었음을 통찰했다.

세 번째는 성인이 된 A씨가 이제 살기 위해서 젖이 필요한 내면의 아이를 보살피고 보호하는 엄마가 되어 주어야 함을 받아들이고, A씨가 한 아이의 아빠로서 굳건한 삶의 기초를 세워갈 수 있도록 현실적응력을 키우는 작업을 하고 있다.

(외부 칼럼은 동양뉴스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