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7 15:02 (토)
섬마을 선교의 어머니 문준경 전도사
상태바
섬마을 선교의 어머니 문준경 전도사
  • 김재훈
  • 승인 2011.07.27 16: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국내기독교성지1. 전라남도 신안군 증도면
 
 여름이면 해수욕객으로 붐비고 겨울에는 바람에 날리는 모래사장 등 빼어난 주변 풍광으로 도시민들이 자주 찾는 섬인 전남 신안군 증도면은 광주에서 승용차로 1시간 30분에 비교적 가까운 곳이다.
 
그런데 이곳의 복음화율이 90% 이상이고, 섬마다 흔히 있을 법한 사당이나 불교사찰도 없다. 이러한 사실을 아는 사람도 그다지 많지 않다. 한국의 복음화율이 15%에도 못 미치는 형편에서 어떻게 이런 놀라운 일이 일어났을까.

낙도 섬마을 선교의 어머니인 문준경(1981~1950) 전도사의 눈물과 순교의 피가 이곳에 새겨져 있다.

문준경은 17세에 신안 증도로 시집 왔으나 첫날 밤에 소박을 맞고 생과부로 20년 가까이 모진 시집살이를 했다. 그 후 목포로 옮겨 혼자 삯바느질을 하며 고달픈 삶을 살던 중 우연히 집에 찾아온 전도부인에게서 ‘복음’을 듣고 그녀를 위로해 주시는 예수를 영접했다. 당시 성결교 유명한 부흥사 이성봉 목사(당시 전도사)의 소개로 경성성서학원에 입학했고, 방학 때마다 고향에 내려와 나룻배를 타고 신안일대 섬들을 돌며 전도를 시작했다.

섬지역은 바람, 태양의 신을 믿는 토속신앙의 오랜 전통으로 인해 기독교 신앙이 전파되기가 대단히 어려운 곳이어서 그녀의 전도의 길은 평탄치 않았다.
남편은 손찌검에 머리채를 휘어 잡아챘고, 동네사람들은 손가락질도 모자라 그녀의 옷을 찢었다. 하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복음을 전하고 곳곳에 교회를 개척했다. 훗날 48명의 순교자가 나온 임자도 진리교회는 그녀가 개척한 첫 번째 교회였으며, 이어 증도의 증동리교회를 세워 그곳에서 시무하면서 대초리교회 등 신안군에 100여개 교회를 직간접 개척했다.

 가난하고 메마른 땅에 그녀는 성자였다.
문 전도사는 새벽기도회가 끝나면 큰 보따리 2개를 머리에 이고 전도활동에 나섰다. 보따리 하나에는 온갖 약품들, 다른 하나에는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줄 음식을 가지고 다니면서, 민생을 돌보면서 복음을 전파했다. 목소리가 곱고 아름다운 그녀의 찬양 소리는 주민들을 모이게 했다. 섬마을의 의사로, 산파로, 보모로, 우체부, 짐꾼노릇을 감당했다. 섬에 괴질이 돌아 돌보는 이 없이 죽어갈 때, 죽음을 무릎쓰고 달려가 간호하고 기도했다. 섬마을 간 다리가 없어서 노둑길과 갯펄을 얼마나 걸고 걸었던지 1년에 고무신을 아홉 켤레나 닳기도 했다.

그 와중에 6·25전쟁과 함께 신안 섬 증도에도 공산군이 들이닥쳤다. 문 전도사는 공산군에게 붙잡혀 목포로 끌려갔다가 운좋게 풀려났지만 두고 온 교인들을 돌보기 위해 다시 신안 증도로 들어갔다가 그곳에서 공산당 잔당들에게 잡혀 1950년 10월5일 새벽2시, 증도면 해안가에서 순교를 당했다.

공산당은 그녀에게 “새끼를 많이 깐 씨암탉” 이라면서 몽둥이로 때리고 방아쇠를 당겼다. 그러나 그 말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녀의 삶을 제대로 대변해 주는 말이 되고 말았다. 그가 세운 교회와 복음을 통해 김준곤, 이만신, 이만성, 이봉성, 정태기 목사 등 오늘날 기독교를 대표하는 100여 명의 유명 목회자가 탄생했다. 증도면 11개 마을에 11개의 교회가 세워졌으며, 기독교인들이 90% 이상인 우리나라 최고의 믿음의 섬이 됐다.

여자의 몸으로 아무런 후손이 없었던 그녀의 순교는 60여년이 흐르는 동안 무심하게 잊혀 진 듯 했다. 문 전도사 밑에서 주일학교를 다녔던 장로, 권사들도 한 명 두 명 세상을 떠나갔다. 그들은 위대한 순교자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기쁨에 넘쳐있었다. 그러나 남은 자들도 문준경 전도사를 다시 만나고 싶었다. 죽기 전에 이러한 사실을 세상에 꼭 알리고 싶어했던 그 남은자들이 드디어 세상을 향해 입을 열었다. 흐릿한 눈이지만 이곳 저곳에 글을 보내기도 하고 증언도 했다. 이제 세상은 그를 알아보기 시작했고, 수 많은 언론들이 그를 취재해 앞다퉈 방영했다.

문 전도사의 위대한 행적은 심연에서 솟아오르는 맑고 부드러운 생명수같이 한국 기독교의 부흥과 성장의 목마름을 해갈시켜주고 있다. 광주=김재훈 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