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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영축사, 경주 감은사에 버금가는 사역 규모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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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영축사, 경주 감은사에 버금가는 사역 규모 확인
  • 남경문 기자
  • 승인 2013.12.10 09: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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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동양뉴스통신] 남경문 기자 = 영축사가 통일신라 시대 경주 감은사에 버금가는 규모였음이 영축사지 유적 2차 학술발굴조사 결과 밝혀졌다.
 
영축사는 '삼국유사'에 창건 내용이 기록되어 있고, 통일신라시대 불교문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울산박물관은 영축사지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2012년 1차 학술발굴조사를 통해 통일신라 시대 쌍탑일금당식(雙塔一金堂式) 가람임을 확인했다.
 
이후 영축사의 규모와 범위를 확인하기 위해 지난 10월부터는 2차 학술발굴조사에 착수해 중문지(中門址), 회랑지(回廊址)를 확인함으로써 영축사의 중심 사역 범위를 분명히 했다.
 
2차 발굴조사에 따르면 중문지는 정면 3칸, 측면 2칸 구조이다.
 
전체 길이 8.6m, 폭 5.1m 규모로, 금당지에서 남쪽으로 30m 떨어져 동일 선상에 위치한다.
 
중문지의 동·서방향으로는 남회랑이 이어지는데, 중문지의 남북 폭은 남회랑보다 약 1.3m 정도씩 넓게 축조됐다.
 
회랑지는 동·서·남·북 모두 확인되었으며, 측면 1칸의 단랑(單廊) 구조이다.
 
동·서회랑지는 금당지 중심에서 동쪽으로 32m, 서쪽으로 32m 지점에, 남·북회랑지는 금당지 중심에서 남쪽으로 29.5m, 북쪽으로 24m 지점에 위치했다. 
 
특히, 회랑으로 둘러싸인 영축사 중심 사역부의 전체 규모는 동서 길이 약 69.5m, 남북 길이 약 56.5m로, 영축사(683년)와 창건 시기가 유사한 경주 감은사(682년)가 동서 길이 74m, 남북 길이 76m인 것과 비교하면 동서 길이의 큰 차이가 없다.
 
따라서 영축사가 신라 지방 사찰임을 고려하면, 당시 영축사는 감은사에 버금가는 상당한 규모의 사찰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 밖에도 통일신라 시대 석불좌상(石佛坐像) 1점이 출토됐다.
 
폭 83㎝, 두께 54㎝, 잔존높이 35㎝인 반가부좌를 틀고 있는 좌상으로, 상반신이 결실되었으나 전체적으로 옷 주름이 자연스럽고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으며 몸체의 양감이 뛰어나 당시 통일신라 공인의 뛰어난 조각 기술을 보여준다.
 
또 좌우 대칭 구도의 쌍조문(雙鳥文) 수막새, 특수 기와인 귀면와(鬼面瓦)와 연화문 마루수막새(곱새기와 ·望瓦) 등 기와류도 새롭게 확인됐다. 
 
울산박물관은 연차적인 발굴조사를 통해 영축사의 창건-중창-폐사 과정과 석탑 축조방법 등을 확인하여 영축사의 역사적 위상을 밝히고 통일신라 시대 울산지역 불교문화 연구의 기초 자료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우림 관장은 “금당, 동ㆍ서탑, 중문, 회랑으로 구성되는 영축사의 가람배치와 경주 감은사에 버금가는 사역 규모를 확인하였다는 점에 큰 의의를 가진다.”라면서 “통일신라 시대 울산 불교문화의 위상이 뛰어났음을 이번 조사를 통해 증명되었다.”라고 말했다. 
 
울산박물관은 10일 오후 2시 울주군 청량면 율리 영축사지 발굴조사 현장에서 ‘울산 영축사지 유적(울산광역시 기념물 제24호) 2차 학술발굴조사 결과’ 현장설명회를 개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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